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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연습47


2010 12 10 오후 4시 서울 중구 명동 서울 YWCA 강당에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서울대공익인권법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고() 조영래 변호사 20주기 추모행사를 열었다고 전한다. ‘전태일평전’의 저자이기도 한 조영래 변호사는 1980년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1990 43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난 조 변호사는 경기고등학교 3학년 때 한일회담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정학 처분을 당했고, 서울대 법대에 수석으로 진학한 후에도 삼성재벌밀수규탄, 68부정선거규탄, 3선개헌반대 등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재학 중인 1971 1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여러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수배와 투옥을 겪은 뒤, '서울의 봄'이라 불리던 1980년 수배가 해제돼 사법연수원에 재입학함으로써 뒤늦은 1982년에야 변호사가 됐다.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돼 1 6개월간 복역하였으며, 민청학련사건으로 수배돼 유신정권 내내 약 6년 동안 숨어 지내며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전태일 정신으로 각인된 <전태일평전 :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그가 도피생활 중에 집필한 것이었지만 사후에야 그의 저작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변호사로서 1984년 망원동수재 집단소송, 1986년 여성조기정년제 철폐, 1987년 상봉동 진폐증 사건, '보도지침' 사건 등 끊임없이 인권변호사 활동을 실천해 옴으로써 글자 그대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불꽃처럼 살다 가신 분이다. 1986년 부천서성고문사건으로 독재권력의 야만성을 폭로했고, 수해를 본 서울 망원동 주민 2400가구를 대리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아냄으로써 인권과 환경문제 등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치열했던 사람”(장기표 신문명연구원장)이었으며, “집단소송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망원동 수재사건(1984), 여성차별을 시정하는 계기가 된 여성 조기정년제 철폐(1986), 주민에 의한 공해병 소송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상봉동 진폐증 사건(1987) 등 우리 사회 민주화의 핵심고리가 된 사건들을 모두 승소로 이끈”(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정의의 사도’로서 1988년 민변의 창립도 그가 주도했다고 전한다.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는 오늘의 시대적 좌표로서 명분을 내던지고 몸으로 진실 그대로를 전하면서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겸손에서 비롯된 그의 행적은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하고도 실재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확증하고 있다. 홍성우 변호사의 추도사에는 “조영래가 가는 곳에는 진실이 있었고, 정의가 있었고, 승리가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가 살았던 그 ‘야만의 시대’에 그는 분명 가장 정의로운 인간의 삶으로써 우리에게 사람사는 세상, ‘인간의 시대의 의미를 남겨주었던 또 한 분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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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5일 일요일

연습46

흔히 '실천하는 지성'의 대표로 불려 온 진보적 언론인이자 언론학자이며, 사회운동가였던 리영희(李泳禧) 전 한양대 교수가 2010년 12월 5일 새벽 0시 40분쯤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1929년 평북 삭주에서 태어나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57년부터 합동통신에서 기자로 일했고, 1964년 유엔의 남북한 동시 초청을 기사화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으며, 1969년 베트남 전쟁 파병 비판기사를 썼다가 조선일보에서 쫓겨났고, 1971년 ‘군부독재ㆍ학원탄압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 참여로 합동통신에서 해직됐다.


1980년 신군부가 ‘광주소요 배후 조종자’ 중 한 명으로 그를 지목, 투옥했을 때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리 전 교수를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은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1987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한국사를 강의하였으며, 이후 한겨레신문의 이사 및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1989년에는 한겨레신문의 방북취재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다시 구속되기도 했다. 그의 인생은 성찰하는 지식인으로서 반지성에 맞선 치열한 싸움의 거침없는 역정으로 충분히 불릴만하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관념’이 아닌 ‘사실’, ‘이론’이 아닌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글쓰기를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라고 정의하면서,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 듯’, 진실과 균형의 날개로 저항하면서 성찰하고자 했다. 리 교수는 <전환시대의 논리>(창비사, 1974), 《우상과 이성》(한길사, 1977)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두레, 1994) 등 다수 저서를 남겼고, 지난 2005년 자서전 <<대화>>(한길사, 2005)를 끝으로 지병으로 인하여 모든 집필 활동과 사회적 발언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우파적 입장에서 ‘비체계적인 인본적 사회주의자’로 평하기도 하고, 사민주의적 사회운동가 또는 좌우(左右)를 뛰어넘는 ‘진보지식인의 대부’로 평하기도 한다. 현대사회가 전적으로 결여한 채 출발하였던, ‘비판적 계몽의 선도자’, 또는 상황이 달라지면 지식인은 지난 날보다 더욱 지혜로와져서 이분법적 사고와 비타협적, 독선, 과격을 벗어나는 자기 수정을 해야 함을 강조하는 2005년의 발언 등으로 ‘성찰의 대부’로 칭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아 인세가 0원이 되는 게 소원’이라던 그의 바람을 뒤로 하고, 오늘 ‘가치있는 새 한마리’가 추락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분명 ‘우상의 시대’에 ‘이성의 첨병’이었다. 그러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기도 하지만, ‘몸부림’이 없다면 앞(?)으로의 진행이 어려울 것이고, ‘분열’은 ‘환멸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성장의 필수과정’이다. 분열의 현재는 고통이지만, 분열한 이후는 ‘한걸음 더 성숙’이다. 그러므로 성숙하기 위해 분열하고, 분열하기 위해 외로운 고통을 선택하는 길, 그것이 ‘합리적인 보수’와 ‘성찰하는 진보’의 진면목이 아니겠는가 싶다. 따라서 지금 눈앞의 현실만을 근거로 당장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것은 오류요, 성급한 결론일 따름이다. 강물은 결코 멈추지 않고 흐른다.


우리는 너무 자주 분열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또한 경쟁력일지도 모른다. 흐르는 강물을 인위적으로 가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흐르게 하는 것, 그것이 반도적 기질의 태생적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다. 병리적 도그마에 대한 반기는 그러한 영향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싶다. ‘가두리양식’은 ‘교활한 양육’에 불과하므로 경계해야 할 것은 분열 그 자체라기 보다는 가려진 기만적 술수들일 것이다.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자유’와 ‘공정’의 이름으로 왜곡하거나 기만해서는 안된다. 민주적인 절차 속에 제도적 참여를 확대해 나가는 것, 그것이 아마도 남아있는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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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7일 토요일

연습45

싸움에도 예외없이 기술과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땅에서는 휴전 이후 한시도 긴장을 없는 상호 대치상태에서 지금까지 서로 많은 비용과 희생을 감내하면서 싸움에 대한 준비를 해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술도 발전하여 싸움의 형태도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는 실정이며, 북한의 핵개발의 의욕은 여전한 듯하다. 배후가 의심되는 해커들에 의한 사이버공격이라든지, 민간인 관광객에 대한 공격, 그리고 검증이 필요하긴 하지만, ‘천안함사건 연평교전에서와 같은 국지전적 도발 등의 양상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이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으로써 의도된 공격인가의 여부는 놓아두고라도, 상황이 발생한 제반 환경들을 되짚어 보면 정부의 미숙한 대응전략이 오히려 불필요한 갈등과 피해를 증폭시켜온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병역의무는 변함없이 신성한 국민의 의무 하나로서 여전히 땅의 정상적인 젊은 주역들은 국토방위의 훈련에 여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위정자와 일부 고위 공직자들은 대부분 병역의무조차 이행하지 않은 자들로 가득 있어 위기상황에 대한 제대로 인식과 대처능력이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휴전상태인 한반도에는 이미 전쟁에 대비한 '교전규칙'(1953년 유엔군사령부가 제정한 것으로 정전협정에 따라 우발적인 무력충돌이 확전되지 않도록 작전 상황을 관리하는 큰 틀의 지침서)이라는 것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는 이번 연평교전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야 말았다. 그에 따르면 현재 '교전규칙'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영토 내 해안포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우리 합참의장과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적 사격시 대등한 무기체계로 2배로 대응해야하는 제한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연평교전에서는 적의 도발 수위와 비슷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비례성 원칙과 적의 도발을 억제할 만큼의 대응이 돼야 한다는 충분성 원칙이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 것 같다. 헌법상 침략전쟁은 부인되며, 전작권을 갖고 있지 못한 현실적인 한계도 또한 그러한 제한들의 한 근거들일 것이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러한 다양한 도발가능성에 대비해 사전에 얼마나 준비된 모습으로 있었던가일 것이다. 교전수칙의 보다 근본적인 존재의의도 실제 발생할 교전상황에서의 대응수칙이라기 보다는 그러한 공개적인 표시로 말미암아 도발상황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사전예방목적이 우선일 것이라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연평교전'을 계기로 확전방지를 강조한 기존의  교전규칙을 개정해서 사후약방문격으로 민간 공격과 군 공격을 구분해 대응 수준을 차별화하여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려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교전규칙 개정은 유엔군사령관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어서 교전규칙의 직접적인 개정은 어렵고, 그 하위개념인 합참의 작전예규나 작전지침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현실적 해석도 있다.  의도된 직접적인 타격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나마 그러한 교전규칙때문에 확전양상으로 전개되지 않은 것이라면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교전규칙을 강화하려는 것은 사전예방보다는 사후보복에 중점을 두는 것이어서 평화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인지는 개인적으로 여전히 의문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사전에 북측의 경고메세지를 접하고도 안일한 대응으로 접경지역에서의 무리한 훈련의 강행과 상황발생 즉시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키운 이 정부의 안보불감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천안함사건'과 마찬가지로 초기 대응은 여지없이 또 늦었으며, 대응할 무기의 일부는 '정비중'이거나 '기능장애'상태 었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 당시에는 음향탐지장치가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대포병레이더가 노후화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처음에는 북한의 포가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몰랐다고 하니 참담한 심정이다.  고군분투한 것은 자신의 철모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전장을 사수하고, 장렬히 산화한 전장의 장병들 뿐이었다.

 

위기시 지휘계통의 혼돈으로 기존 교전수칙상의 대응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켜 보면, 그동안의 호언장담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믿음에 대한 보장도 할 수 없으며 이해관계가 다른 누군가의 그늘에만 의지해서 무책임하게 국민의 목숨을 걸고 소리만 높인 허세가 아니었던가 싶다. 싸움에 있어 최선의 기술과 준비란 '싸우지 않고 이기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언제까지 '위험한 도박'을 일삼을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이처럼 무책임한 상태에서 만약 그 폭탄이 우발적으로라도 서울로 향한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처럼 편안한 한탄조차 가능하겠는가?

 

분명한 것은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국제적 역학관계와 첨단기술, 잠복된 핵무기의 위험을 앞에 두고서 '전쟁' 운운하면서 위기를 키운다면 남과 북, 어느 누구도 결코 승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과 햇볕정책의 성과를 이제는 이 정부의 모토인 '실용의 관점'에서도 차분히 비교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무엇이 서로를 더 이롭게 하며 진정한 승리의 길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실용의 핵심적 관점이 투입 대비 ‘산출’의 효율성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얻은 것은 또 무엇인가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싸움의 기술과 준비는 가능한 싸우지 않기 위한 것들이어야 할 것이며, 싸움이 있더라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것들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것만이 모두가 승리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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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9일 목요일

연습44

2010. 07. 28. 재보궐선거는 끝났다. 결과는 여당인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다. 야당인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이런 참담한 결과를 예측하긴 어려웠을 것이지만, 이미 예정된 조짐들은 일찌감치 있었다. 후보단일화 과정을 두고 보인 민주당의 행태는 정권심판론을 재탕하면서도 스스로는 전혀 성찰하지 않는 오만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로 보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 독주에 제동을 걸기 위해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민심은 야당의 손을 들어주어 이를 견제하려고 하였지만, 현 민주당의 정체성으로는 민심의 뿌리로 파고 들기엔 분명한 한계를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야당의 바람을 경시하고 안이한 인물공천과 단일화 과정에서의 일방통행적 세력행사로 현 정권과의 차별화에 실패하여 참패를 초래한 것이리라.

비록 정권심판론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정책의 방향은 놓아두고 그 진정성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현 정부의 오로지 한 목적을 위한 소통없는 저돌적인 집행력과 민주당의 행태는 너무나 닮아있질 않은가. 힘의 분배를 무시하고 절차를 존중하지 않는 일방통행에 실망한 민심은 야당에게서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게 되자,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는 한여름 밤에 꾼 그들만의 꿈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여실히 확인시켜 준 것이다.


상징적인 지역구인 은평을구에서는 비록 현 정권의 실세인 후보가 지방선거에서의 민심의 심판을 의식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체의 중앙당의 지원을 배제하고 홀로 투쟁한 선거과정에서의 ‘진정성’을 참신하게(?) 평가받은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얼마만큼의 대가와 실망을 유권자가 또 감당해야 할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겠지만, 차별성없는 명분보다는 현실적으로 실리적인 대표자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민심인 것이다.

그 밖의 지역에서도 민주당의 뚜렷하지 못하고 힘이 실린 신뢰를 찾아보기 어려운 정권심판론은 6・2지방선거에서와는 달리 강한 바람을 일으키지 못했으며, 그 틈새로 후보중심의 개별 인물들의 지역 실리주의가 판세를 갈랐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혹자는 ‘진정성’에 대한 평가를 지나치게 낮게 두기도 하지만, ‘진정성’조차도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덕목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진정성’의 방향이라는 것이 오로지 자신과 지역,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 국가 전체의 공익을 향할 때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임을 아는 일일 것이다. 가치의 방향설정이 뚜렷하지 못할 때 현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진정성’이라는 맹목적 가치만으로도 그것이 구체적 실리와 결합할 때에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 변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바위를 뚫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물방울들이 쉼없이 추락해야 하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긴 새벽을 뜬 눈으로 지키면서 기다려야 할 것인지 되돌아 보게 한다. 모든 결과는 그 자체로써 원인을 갖는 것이므로 무법(無法)이 아닌 한, 각자의 뜻과 다를지라도 운명처럼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또한 민주주의일 것이다.

민심은 그렇게 쉬지 않고 흐르는 것이므로 누가 과연 최후의 동행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오직 방심(放心)없이 민심(民心)의 주류(主流)를 살펴 함께 흐를 뿐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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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5일 토요일

연습43

2010. 6 .2. 선거는 끝났다. 총체적으로 본다면 야당의 승리로 결론지어도 무방할 듯 하다. 북풍에 맞선 노풍을 전면에 부각시키며 전 정권의 심판론을 내세웠던 여당의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역풍을 맞은 셈이다. 반면 전쟁과 평화의 구도로 반 MB의 연대를 형성한 야당은 결과적으로 일정부분 성공적인 전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막강한 보수언론을 등에 업은 초반의 형식적인 여론조사의 불리한 결과를 안고서도 최종적인 전국적인 득표 상황을 보면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다수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보아도 무방 할 듯 하다. 주요 쟁점인 4대강과 세종시, 그리고 무상급식 등의 문제에 있어 대다수 국민들의 선택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정부의 태도는 현재로선 아랑곳없이 밀어붙일 태세다. 그러나 상황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 들의 협조 없이는 4대강사업의 원활한 집행이 차질을 빚을 뿐만 아니라, 세종시 원안고수라는 지역주민의 입장을 선거의 결과로서 확인한 지금 중앙정부가 이에 상반되는 행보를 보일 때는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제도적인 절차 내에서 소통으로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부와 여당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혀 결국 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확률이 높다. 만약 전국적인 불복종운동으로 비화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제는 대통령의 임기도 절반을 넘어 후반기로 접어들었다. 여당 내에서도 예전과는 달리 반복될 재보궐선거와 다가올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발빠른 득표계산을 할 것이다. 여당 내에서조차 다른 목소리들이 힘을 싣게 된다면 정권의 레임덕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방법은 겸허하게 선거의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는 길일 것이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어떤 형식의 선거라도 분명 정부와 정책의 심판기능을 당연히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방선거와 교육선거였지만 위정자의 입장에서는 국민이 중앙정부를 함께 심판했다고 보아야하는 것이 정의의 기준에 맞다. 야당의 입장에서도 이번 선거의 결과를 결코 자만해서는 안된다. 반 MB의 연대로 형식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여전히 절반의 승리다. 서울과 경기에서 기초자치단체장의 결과와 광역자치단체장의 결과가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지 후보자 개인의 실패로 치부하기 보다는 여전히 다양한 선거권자 개인의 입장이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본질적인 인간으로서 극복하기 어려운 벽이 남아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이 탐욕으로 흐르지 않도록 제어하고, 공정한 심판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안에 따라 인물연대와 정책연대로 힘을 합하되, 평상시에는 각 당이 그 존재를 유지하면서 더욱 선명성 경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진보의 가치는 끊임없이 분열하되, 대의에 맞서서는 또한 망설임없이 연대함으로써 유지되는 것이다. 연대하지 않는 진보는 선명성 경쟁에서는 성공하겠지만, 필요한 물길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들이 진정한 진보의 씨앗을 뿌리고 있음을 부정해서도 안된다. 물길을 바꾸더라도 그 물길에 안주하는 것은 또 다른 보수이지 진보의 길은 아닌 까닭이다. 그러므로 야당의 입장에서도 ‘통합을 위한 통합’논의보다는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치철새’는 신념도 없이 이해에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을 의미하지만, 정작 ‘철새’는 길 아닌 길을 가지 않는다. 철새로 하여금 길 아닌 길을 가게 만드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다른 변수들이다. 불가항력이란 당사자를 비난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작용한다는 말이다. 정치인들이 철새를 운운하는 것은 어찌보면 철새를 모욕하는 일이다. 늘 그렇듯이 이번 선거결과도 각자의 입장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긴 하겠지만 딱 그만큼의 우리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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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8일 일요일

연습42

인천 부평을 기반으로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로서 각자 자기 영역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겨 후대에 부평삼변(富平三卞)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산강재(山康齋) 변영만(卞榮晩), 일석(逸石) 변영태(卞榮泰),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등 변씨 3형제를 일컫는다. 이 중에서 변영만 선생(1889~1954)은 세 형제의 맏형으로서 대한제국의 사법관리 양성기관이었던 법관양성소와 보성전문 법률과를 거쳐 목포재판소 판사로 임명되면서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지만, 1908년 사법권이 일제에게 넘어가자 판사직을 사임하고 신의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한일합방이 되면서 바로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8년 귀국하여 한학(漢學)에 전념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헌법제정작업에 참여하였고, 반민특위재판장과 사법부법전편찬위원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학(國學)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고 한다. 번역서 <세계3괴물>에서 그는 부족정체(富族政體), 군비정책(軍備政策), 제국주의(帝國主義)를 당시의 세가지 괴물로 언급하면서 자본의 탐욕과 군비의 팽창을 등에 업은 금권정치, 군국주의의 서구근대국가모델에 대응한 우리 국민의 자세를 논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한민족의 생존능력을 길러 우리식의 제국주의를 발휘할 것을 염원하면서 대등한 세력으로서의 국력에 대한 선망을 나타낸 독립적 지식인으로 기록되고 있다.(변영만전집, 성균관대학교동문화연구원) 그가 말한 국민주의, 한민족의 생존주의는 약소국의 소외를 극복하고자 하는 방법으로 일본식의 침탈로서의 제국주의가 아니라 대등한 균형세력으로서의 균점적 제국주의를 희구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비단 국가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 국가내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칼자루를 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대응과 평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전자는 최대한 무한의 ‘자유’를 요구하지만, 후자는 ‘평등’을 무기로 최소한의 대항을 할 수 밖에 없는 취약한 한계가 그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개인이나 국가의 ‘자유’란 무한의 자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나 다른 국가를 존중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범위내의 ‘평등을 내포한 자유’라는 보편적 정의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침탈은 ‘불법적’임에는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약탈적’ 제국주의의 탐욕에 눈 먼 개인과 국가들이 있으므로 개인과 국가의 힘을 정의롭게 키우되 늘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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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3일 화요일

연습41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는 주한 외교사절들이 한국을 떠날 때 본국으로 가지고 가고 싶은 것 중 하나로 빠지지 않고 자주 거론되는 것이고, 미국 보건부장관이 전국민건강보험을 현실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경험을 직접 듣고 싶어할 정도로 오바마정부의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보장성의 확대와 지불제도의 개선을 통한 재정안정화문제 등 아직 가야할 길이 멀기는 하지만 가장 저렴한 보험료로 최고의 의료접근도를 자랑함으로써 어느 국가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성취 중의 하나임에도 최근의 의료법개정안이 의료민영화의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위협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미국 오바마정부는 전 국민의 의료보험가입추진을 목표로 의료기관에 대한 공적규제를 강화하면서 공적보험을 추가・신설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반면에, 이미 오랜 기간동안 이를 준비하면서 댓가를 치른 진통 끝에 겨우 실현하고 있는 우리 제도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까지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1963년 의료보험법에 의하여 임의적용으로 시행되었고, 1976년 의료보험법의 전면개정으로 1977년부터 강제적용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1988년 농어촌지역의료보험, 1989년 도시자영업자 확대실시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당연지정제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어 의료보험민영화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것 아닌가하는 호의적인 입장도 있지만, 원격의료의 허용, 병원경영지원사업을 포함한 의료법인 부대사업범위의 확대, 의료법인 합병허용 등의 내용은 결코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형식으로든 의료법인의 이익분배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비의료법인의 직간접적 경영참가를 제한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보험으로서의 공공성구도를 실질적으로 이익분배와 간접적 경영참가가 가능한 영리산업의 효율성구도로 전환하려는 시도자체가 지극히 자본의존적이어서 소규모 병의원종사자들의 생존권과 국민의 생명권, 건강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산업의 세계적 경쟁력을 위해서 보다 효율적인 제도로 보완・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은 있겠지만, 인간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대상으로 한 의료분야에서 산업적 측면의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는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성과로서의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의 최소한의 단계적 개선에 그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본의 탐욕은 늘 둑의 틈새를 노리고 있으므로 바늘구멍이라도 생기게 되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규제완화가 결코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으며, 건강보험과 같은 공적영역에서는 오히려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는 측면에서의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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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9일 금요일

연습40

하토야마 유키오(鳩山 由紀夫) 일본 총리가 독도에 관한 오랜 침묵을 깨고 독도문제에 관한 한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바꿀 마음이 없다고 함으로써 사실상 일본 영토임을 선언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의 고유 영토다. 한국에 의한 다케시마의 점거는 국제법상 어떤 근거도 없이 행해지고 있는 불법점거로, 한국이 이러한 불법점거에 근거해 행하는 어떠한 조치도 법적인 정당성이 없다"라고 내걸고 있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독도의 ‘실효적지배강화’ 선언을 의식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우리 정부의 입장과 독도의 역사, 그리고 일본에 대한 권고사항들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행한 독도연설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난해 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중학교 학습에 입각한 교육'을 하라고 요구한데 이어, 올해에는 초등학교 5종의 검정교과서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분명히 하도록 하면서 예의 그 교묘한 술책으로 지속적인 분쟁지역화로 이끌어가는데 이제 하토야마 총리까지 노골적으로 거들고 나선 것이다. 1955년 그의 조부가 기틀을 다진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를 54년 만에 막을 내리게 하고 민주당의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면서 수차 ‘과거를 제대로 직시’할 것임을 밝혀 약간의 기대도 없지 않았지만, 숨겨진 그의 속내가 그런 허위의 역사인식이었다면 위기에 처한 현 정치적 상황에서 그의 ‘국내적 우애(友愛)’는 다질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국제적 우애(友愛)’의 길은 멀기만 할 것이다. 임나일본부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독도도 일본 역사에는 처음부터 주권국가의 정당성으로서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인정해야 제국주의의 어두운 ‘허구와 기만의 역사’를 넘어 진정한 ‘평화와 문화의 역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약탈 문화재의 아픈 흔적들이 선명한데 그에 대한 일고의 반성조차 없이 역사적 진실들을 지속적으로 왜곡한다면 일본은 더 이상 문화국으로도, 우애(友愛)의 나라로도 존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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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8일 목요일

연습39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인터넷실명제(제한적본인확인제) 적용대상 사이트에서 유튜브가 제외됨으로써 역차별 논란과 함께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논란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게시판을 운영할 때에 이용자의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제도로서, 공공기관 등과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서 제공하는 정보통신서비스의 유형별로 전년도 말 기준 직전 3개월간의 일일평균 이용자수가 10만명 이상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그 적용대상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유튜브의 경우 국내법상 사업자등록이 되어야 하지만, 지난 해의 본인확인제 적용대상이었던 유튜브코리아(kr.youtube.com)가 없어지고, 대신 지금은 국내에서도 유튜브닷컴(youtube.com)으로 접속되기 때문에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형식적인 법의 해석과 적용이 현실적으로 국내 서비스제공자들과의 차별까지 초래하고 있고, 실질적으로도 제도도입의 효과를 제대로 내고 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적용대상의 국내업체들은 댓글 등의 게시판을 폐쇄하거나 실명요구를 할 수 밖에 없지만, 유튜브 등 외국업체의 경우는 이러한 법적 제한을 피해 우회적인 방법으로 여전히 댓글과 업로드를 할 수 있으므로 결국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국내업체의 경쟁력 상실과 대외적으로는 국가 이미지만 실추시키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중국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서 구글의 검색을 통제하였지만, 홍콩을 통한 우회적인 접근방법으로 구글이 이를 무력화시킴으로써 하나의 기업이 한 국가의 인권문제를 세계적으로 부각시킨 결과까지 초래했다. 국경을 초월하여 넘나드는 인터넷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를 당사국의 문화수준에 맞게 제한적으로 통제할 필요성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사후(事後)적인 최소한의 통제에 그쳐야지 사전(事前)적으로 접근 자체를 막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제한이라고 본다. ‘실명의 의무’보다 ‘익명의 권리’가 비판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표현의 자유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이므로 ‘익명의 권리’는 ‘실명의 의무’에 우선해야 한다. 따라서 익명으로 표현된 결과물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협할 경우에만 사후적으로 필요한 범위 내에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며, 이 경우에도 필요한 최소한의 제한에 그쳐야 하는 것이다. 하루 10만명 이상의 사이트방문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게시판 이용을 위해 선택의 여지없이 필요적으로 본인확인을 요구하는 것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표현의 자유, 그리고 평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등에 비추어 다분히 위헌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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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7일 수요일

연습38

부동산시장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하락의 조짐이 뚜렷해지자 버블붕괴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여러 군데서 감지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보금자리정책의 효과라든지 시프트정책의 효과로 조급하게 해석하는 견해도 없지 않으나, 단편적인 해석에 불과한 듯하고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된 큰 흐름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참여정부시절 분양원가공개를 완전하게 관철시키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양극화를 극대화시키면서 당대에는 비록 부동산가격을 안정화시키는 데는 실패했을지언정, 결코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실수요중심의 각종 단계적 대책을 통한 세금정책으로 가수요를 줄이면서 신도시개발로 공급을 늘린 고민의 흔적들이 지금 효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본다. 이명박정부에 들어서서는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의 근간을 뿌리채 뒤흔들면서 각종 규제들을 철폐 또는 완화함으로써 오히려 가격안정의 시기를 다소 늦춘 것에 불과하다. 국민들의 소득에 비해서 세계적으로도 유래없는 지나치게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고공행진을 하던 와중에 닥친 세계경제의 불황이 또한 부동산경기를 폭락으로부터 부양시킬 필요성으로 여전히 남아있어, 지금의 속도도 그동안 풀린 돈의 힘으로 그나마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지역균형발전정책이나 행정수도로서의 세종시도 원안대로 고수되어 갈등없이 추진되었더라면 부동산가격, 특히 아파트가격에 관한 한 확실한 안정화가 더욱 촉진되었을 것이다. 유래없는 세계적인 경제불황과 위기도 누가 원해서 온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예정되었던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듯이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으며 그 끝을 가늠할 수도 없는, 그러나 암암리에 잠재되어 있었던 그 불안한 심리들에 기대어 길고 긴 어둠의 계곡을 지금 흐르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나마의 안전망도 이른바 시장친화적으로 대부분 제거해버린 뒤라서 뒤늦게 어슬프게 올라탄 선의의 피해자는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위주의 영업행태에 의존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책임도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양도소득세감면이라는 것은 양도소득이 있을 때의 문제이지 최고점으로부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때의 효과적인 대책은 될 수 없을 것이며, LTV나 DTI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지금은 오히려 부실을 더욱 키울 염려가 있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토지대금과 평당 건축비 등의 무분별한 탐욕으로 초래된 미분양도산으로 위기에 처한 건설사들의 이익과 생존보다 중요한 것이 서민들의 주거환경의 개선과 안정화다. 그나저나 아파트가격은 실수요중심으로 적절하게 제자리를 잡아가는 중인 것이지 예정에 없던 붕괴의 수준은 아직 아니라고 본다. 안보까지 위협할 정도의 각종 생활문화여건의 수도권집중과 정비사업의 동시적 시행, 학군수요 등으로 계속적인 전세값 상승이 있고, 더불어 지속적인 수요가 있을 것이어서 단지 지금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지만, 인구감소추세와 주택보급율, 추가적인 예정공급물량 등을 감안할 때 대세는 이미 기울었고, 여전히 더 떨어질 것이며, 앞으로도 더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주거의 질적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취약한 주상복합이나 아파트의 가격이 본래 있어야 할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뒤늦었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흐름이고, 대부분의 집없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런 일이다. 아파트의 매매거래는 줄고 있는데 전세수요는 늘어 전세보증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는 것은 이미 발빠른 사람들이 갈아타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서민들의 걱정이라면 앞으로의 집값보다는 기타의 물가상승으로 인한 지금 당장의 생계비걱정이 더 우선일 것이다. 개인적인 희망이 섞인 단견에 불과하지만 그런 전망을 하는 것이 아파트가격에 관한 한 사람사는 세상의 보편적 상식에 보다 가까운 결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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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6일 화요일

연습37

천안함사건의 방향이 실종자수색에서 침몰함의 선체 인양작업 쪽으로 선회한 후 민관합동으로 인양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사고 원인해명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군의 지원까지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만의 하나 침몰원인이 제3세력의 의도적인 수중공격에 의한 것으로 결론이 날 경우를 대비한 국제적인 파장을 우려한 사전조치로 해석된다. 또한 인양작업 도중 선체의 절단면은 이를 공개할 경우 언론의 억측과 의혹이 보도되는 것을 막고, 희생자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비공개로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혹을 키운 것은 언론보도라기 보다는 오히려 시종일관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는 군의 대응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불확실성과 혼란은 확실한 사실적 자료들이 제시되지 않음으로써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희생자에 대한 예우차원이라면 희생자 수습을 끝낸 후 객관성이 확보되는 공정한 민관전문조사단의 입회하에 공개적으로 검증하면 족할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커지는 의혹을 줄이면서 보다 정확한 해명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만약 일부의 세력들이 자신들이 의도하는 쪽으로의 결론도출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어떤 시도를 한다면 일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실종자 가족들의 거듭된 요구에도 여태 생존자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교신기록이나 항해일지 등 당시의 정황을 증명할 자료의 공개요구에도 군은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다. 나아가 사고 당시 충격으로 단전된 상태에서는 격실환풍기가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져 이미 침수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즉각적인 조치없이 뒤늦은 늑장대응과 강요된 무리한 수색으로 희생을 키운 사실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만다. 선의의 구조작업 도중에 발생한 불상사들이야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미숙한 판단으로 악의적으로 왜곡되거나 숨겨지는 진실들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살아남은 58명의 장병들과 관련 초병들의 입이 언제까지 굳게 닫혀 있을런지 몰라도, 머지않아 그들은 실종된 전우들의 고귀하고 장렬했던 마지막 순간을 어떤 형식으로든 역사에 증언하리라고 믿는다. 살아남은 것은 결코 죄가 아니더라도 침묵하고 있는 것은 죄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사기밀이란 기밀로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어야 하며, 아무리 상관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위법한 명령에는 군인으로서도 복종할 의무가 없고, 진실을 말할 수 있었음에도 말하지 않은 책임에 대한 비난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잔인한 봄날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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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5일 월요일

연습36

마침내 천안함 침몰현장에서 실종 장병의 시신 한구가 수습되자 기나긴 오열과 긴장 속에 실종자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던 탓인지 추가적인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며 실종자 수색작업의 중단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고현장은 침몰함정의 선체인양작업으로 방향을 바꾸어 민관합동으로 조속한 진행을 위하여 힘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구조작업을 돕기 위하여 현장에 출동한 미군들은 그들의 안전수칙을 핑계로 제대로 도움이 되질 못하였고, 뒤늦은 군의 무리한 작업 탓으로 안타까운 희생만 키운 감이 없질 않다. MBC의 보도에 의하면 비공식적으로 입수한 일지상 상황발생시간은 3월 26일 밤 9시15분경이고, 해경의 상황접수시간은 9시16분경, 초병의 폭음청취시간도 동일한 9시16분경으로 속속 드러나면서 여러 증거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음에도 군은 최초 9시45분, 최후 9시22분으로 여전히 7분이라는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솔직하고 신속한 초동대응이 있었더라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며, 사전 안전점검과 위기대응 소통만이라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더라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UDT의 전설이라는 모범적이고 책임감있는 훌륭한 고(故) 한주호 준위와 같은 군인들이 그 공백을 메우려 하고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역부족으로 그 조차 잃어버리는 안타까움을 더하고 말았다. 뒤늦게나마 군관민이 그의 예우에 가능한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미약하지만 유가족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현재까지 고(故) 한주호 준위를 제외한 45명의 실종자와 최근 수습된 고(故) 남기훈 상사 외에도 결코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희생자들이 있다. 바로 생업을 뒤로하고 실종 장병들의 수색작업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귀환하다 불의의 충돌사고로 침몰되어, 사망으로 확인되고 있는 제98금양호 선원들이다. 시신으로 최초로 발견된 고(故) 김종평 선원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 학익동 송도가족사랑병원에는 상주도 없이 빈약한 조문객과 함께 그의 동거인만이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천안함사건의 원인에 대해서는 더 정확하게 따져보아야 할 점들이 많고 그 안타까움이야 이루 말로 다하기 어렵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군인들은 그들의 본분이었고, 선원들은 그들의 의무와 상관없는 자발적인 희생이었다. 의로운 희생의 댓가들을 금전으로 평가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점이 있고, 실종자들의 가족들도 모든 실종자들이 최종적으로 귀환할 때까지 일체의 협의를 미루고 있는 입장이긴 하지만, 해경에서 보내온 화환 하나만이 덩그러니 지키고 선 선원들의 넋들을 위로하는 마음조차 소홀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 분들의 명복을 빈다. 위대한 장병과 국민, 그리고 아쉬운대로 장비들은 갖춰져 있지만, 그에 어울리는 위대한 관료와 국가, 그리고 시스템은 없거나 작동하지 않는 듯 하다. 아직도 남아있는 7분의 공백만큼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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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3일 토요일

연습35

천안함사건으로 인한 실종자 수색작업이 9일째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돕기 위해 참여했던 저인망어선 중 한척의 침몰로 새로운 실종자 9명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한다. 애타게 기다리는 반가운 소식 대신 안타까움들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군의 대응은 실종자 가족과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꼬리를 무는 각종 의혹들을 잠재우고 천안함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사고당시의 배의 속도와 위치 등 각종 정보들이 자동으로 저장되는 '해군전술지휘체계'(KNTDS)라는 자료를 비롯한 교신기록, 항해일지 등의 공개,  생존자들의 증언요구에 대해 군은 여전히 거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초 구조작업을 한 해경과 군의 입장이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고, 민관합동조사관의 구성도 군관중심으로 편중되어 있으며, 이미 사고발생시간조차 수차례 수정 발표한 군에 대한 신뢰는 이미 추락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직후부터 지금까지 청와대 지하벙커에 있는 위기관리센터에서 모두 네 차례의 회의를 열었다. 위기관리센터는 참여정부시절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종합상황실이 이명박정부에서 대통령실장 산하의 위기정보상황팀으로 축소되었다가, 2008년 7월 금강산관광객피격사건으로 인해 확대 개편됨으로써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대통령은 ‘성공한 초동대응’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을 했다. 거짓된 보고를 바탕으로 한 원천적 오판을 근거로 했든지, 진실된 사실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판단을 근거로 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국군통수권자에 대한 군의 항명이며, 이는 통치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군이 주권자인 국민을 너무 가볍게 본 처사다. 어느 경우든 무너진 신뢰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해 국정조사 등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진상을 밝힌 후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침몰한 어선의 실종된 선원의 시신 인양소식은 들리지만, 46명의 실종 장병들은 어느 차가운 하늘에 갇혀 있는지, 마지막 귀환명령의 염에도 답변이 없다. 최소한 천안함 함장을 비롯한 살아남은 장병들이 실종된 전우들의 한이라도 대변할 수 있도록 조속히 그들의 증언들을 자유롭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적군의 손에 죽게 하는 것보다 아군의 손으로 입막음하는 것은 실종자들과 현장의 피눈물을 가슴으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 전우들을 두 번 모욕하는 일일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국민의 알권리가 군사기밀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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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일 목요일

연습34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한지도 벌써 일주일째로 접어들고 있다. 여태 갈증같은 구조소식은 전해지질 않고 설상가상으로 사고현장의 기상상태가 나빠 구조작업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그 와중에 구조요원 한명의 안타까운 희생까지 불러왔다. 군은 사고당시의 동영상자료와 교신일지의 공개요구에 대해서는 군사기밀을 이유로 극히 일부만 공개하거나 공개자체를 거부함으로써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군사기밀이란 ‘실질적으로 기밀로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함에도, 46명의 장병들의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지금, 사고 전후의 현장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개요구조차 계속 군사기밀을 들먹이는 것은 뭔가 허물을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고, 신뢰는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구조작업 도중 순직한 해군 특수전여단(UDT) 소속 고(故) 한주호 준위는 33년을 군에 복무함으로써 위기의 순간에 늘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면서 후배들을 챙긴 위대한 군인이었다고 한다. 단지 군복무를 위한 신체검사조차 회피하기 위해 늘 행방불명이 되던 사람들은 또 여지없이 위기의 순간에 행방이 묘연해질 것이므로 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식들을 군에 보내보지 못한 사람들은 또 어찌 실종자 가족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벙크 속에서의 비상대책회의에서 강조한 ‘성공한 초동대응’이 총체적 부실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 현실들은 군이 제대로 비상대처능력이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비들은 있어도 제때 활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운용면에서의 시스템부재와 늑장대응은 비단 실종자 가족들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을 분노케 하고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미 수차례 교전까지 한 지역에서 북한이 공공연하게 위협까지 하고 있던 상황에서, 더욱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남북의 긴장이 최고도로 달해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대응능력뿐이라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너무 무책임한 도박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어떤 원인으로 어디서든 누수가 있다면 완전히 침수가 되기 전에 가능한 한 빠르고 솔직한 조치만이 두동강이 나는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예방책임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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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9일 월요일

연습33

천안함이 원인모를 폭발로 침몰한지 64시간이 지나고 있다. 격실에 마지막 생존자가 있다면 생존가능한 추정 69시간을 5시간여 앞두고 있는 긴박한 시점이다. 뱃머리(함수)부분에 이어 뱃꼬리(함미)부분까지 찾아내어 지금 한참 구조작업이 진행 중인 모양이다. 사고발생부터 현재의 구조작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실이 정확하고 진실되게 밝혀져야 하겠지만, 해군과 해경 그리고 목격자들의 진술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당연히 초동대응이 잘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도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판에 초동대응이 잘되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등의 말들을 미리 함으로써 피해 당사자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지금까지의 경과만 보더라도 해경보다 먼저 사고현장에 도착한 해군은 조난신호를 받고 출동했음에도 구조장비가 없어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가 뒤늦게 지원요청을 받은 해경이 폭발이 있은지 70여분이 지난 10시43분쯤에야 생존자 구조를 시작했고, 밤 11시35분까지 구조활동을 펼쳐 생존자 58명 중 56명을 구했으며, 나머지 2명은 인천시 소속 어업지도선이 구했다고 한다. 보도된 목격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구조된 후 사고 현장을 빨리 떠난 사람이 함장과 부장이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함장이 침몰하는 배와 함께 가라앉는 것은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라며 상부에 보고하는 등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해군에서 복무했던 예비역의 진술에 의하면 해군 함정에 고무보트가 없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탈출용 튜브나 비상용 구조장비 등 다른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구조 시도는 할 수 있다면서, 속수무책이었던 해군을 질타하고 있다. 또한 목격자들은 배 뒷부분이 물에 잠긴 것은 맞지만 곧바로 잠겼다기보다는 사고발생시로부터 2시간여에 걸쳐 구조가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가라앉은 것이라는 진술이 다수였다. 더불어 거액을 들여 안보전시관을 건축하는데 예산을 전용함으로써 승조원 개개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무선인식(RFID)라이프재킷’ 도입을 유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피해를 키운 결과가 되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해군근무수칙 중에도 ‘비상이함절차’가 규정되어 있고, 함장은 ‘비상이함절차를 지휘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생사와 행방이 불명한 전장의 병사를 두고, 보고를 위해 가장 먼저 현장을 이탈한 함장을 포함한 지휘부의 초동대응에 대해 정확한 진상조사와 함께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엄격한 ‘비상이함절차지휘책임’의 확인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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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32

한해 4조원이 넘는 국가연구개발예산을 배분하는 지식경제부 산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가연구개발전략기획단’ 단장으로 지식경제부장관과 공동으로 황창규 전 삼성전자사장(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장)이 내정된 모양이다. 메모리반도체의 용량을 매년 2배씩 증가시킨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 단장의 발탁은 국가전략의 비전이 앞으로도 여전히 ‘속도전’과 ‘양(量)의 법칙’에 맞춰진 느낌이다. 또한 20세기 미국 정치사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오늘의 세계적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은 자본가 록펠러(석유사업)와 JP모건(금융업) 등 가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특정 가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치적 구도도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삼성전자 전 회장이 겉으로는 삼성의 위기를 일갈하며 다시 경영일선으로 복귀할 만큼, 아이폰의 도입으로 초래된 새로운 사회의 주도권에 대한 위협은 이미 현실이 되어 있다. ‘양(量)’의 측면에서는 그동안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질(質)’의 측면에 있다. ‘삶의 질(質)’도 문제이긴 하지만, 우선 급한대로 ‘산업의 질(質)’부터 따져 보아야 할 때다. 어떤 형식으로든 현상을 존재하게 하는 데는 형식과 내용이 상호 불가분적 연관으로 둘 다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가 제조업 중심의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는데 주도적인 영향력을 형성해 왔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분명 정보중심의 내용이 형식을 이끌어가는 형국이 될 것이라는 데 대해서 이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양(量)의 법칙’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과거의 향수에 마냥 젖어 있을 것이 아니라 다르게 사고하고, 다르게 결정하는, 비록 느리게 보일지라도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질(質)의 법칙’을 찾아 나설 때가 아닌가 한다. 아이폰의 도입이 몰고 온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신호는 결코 형식적인 변화만으로는 쉽게 담아낼 수 없을 것이며, 의식의 혁명까지 필요할 정도의 거대한 위협이 아닌가 싶다. ‘가두리양식’에 익숙해진 ‘가두리사회’의 울타리를 과감하게 쳐 내고, 자유로운 사고와 공정한 경쟁의 바다로 나아갈 때만이 희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황의 법칙'이 새로운 ‘질(質)의 법칙’으로서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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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금요일

연습31

올림픽이 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아 치르진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의 출전선수 선발과 관련하여 뒷말이 무성하다. 올림픽 2관왕을 차지한 선수를 배제하고, 선발전 순위도 무시한 관련단체의 자의적인 선발과정에 대한 불만인 듯 하다. 더불어 작년에 치르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준우승으로 획득한 상금의 배분문제와 관련하여서도 해당 선수들과 협회측의 갈등이 도마에 올라있고, 방만한 자금집행의 흔적들로 소송까지 진행 중인걸 보면 정작 공로를 인정받아야 할 당사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인가 분명해 보인다. 또 국내 유명 사립대 대항전에서 일방의 감독이 심판을 매수하여 관련 종목의 승부를 조작해 물의를 일으킨 사건도 있다. 비단 드러난 이러한 사실들 뿐이겠는가. 스포츠도 이미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 전락했다고 볼 정도로, 그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도 ‘스포츠정신’보다는 오히려 ‘기업가정신’에 더 충실한 세태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국가도 이미 기업임을 선포한 마당에 ‘스포츠정신’을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들 크게 비난받아야 할 것인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거기서 상처를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아이들이며, 노략질을 하고 있는 것은 일부 어른들이다. 일부 어른들의 사고가 다수 아이들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면 진정한 ‘스포츠정신’은 실종될 것이며 더불어 ‘스포츠’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백번 양보하여 시대정신이 그러하다하면 그 성과물이라도 공정하게 배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부 세력들이 자기들만의 잔치에 흥청망청 낭비하고 만다면 그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앗아가는 것이며, 사회통합은 차치하고 사회가 회복 불가능한 악질의 병에 걸리는 것과 같다. 이미 심판이 심판이기를 포기하고 더불어 장외 선수가 되기로 한 이 사회의 질서는 누가 지키고 세울 것인지 의문이다. 흐르는 물길을 가두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지금, 더 이상 부패하지 않도록 ‘본래의 정신’인 빛과 소금같은 ‘사람의 가치’들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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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5일 목요일

연습30

국보급문화재를 포함한 중요 문화재들이 일본 왕실도서관(궁내청)에 보관되어 있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일제 강점기때 조선총독부를 통한 강탈 내지 약탈해 간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수차에 걸친 반환요구에도 일본은 1965년의 한일협정상 문화재청구권포기조항을 들어 발뺌을 하고 있고, 우리 정부의 입장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경우도 병인양요때 강탈해 간 외규장각도서 반환문제에 대해서 정부간 대화는 진척이 없고 오히려 민간단체에서 반환소송을 제기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유네스코산하 ‘문화재반환촉진정부간위원회’에서 제국주의 식민침탈 당시 불법적으로 약탈한 문화재에 대해서는 원소유국으로의 이양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피침탈자가 약탈임을 입증해야 하고, 환수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 고민 중이라고 한다. 이런 침탈국들의 행태로 볼 때 숨겨진 문화재가 얼마나 더 있을 것인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지금 불현듯 그런 문화재를 공개하여 여론을 호도하는 저의도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의도도 수면 위로 떠오르겠지만, 어느 당국자의 말대로 더욱 감춰질 우려를 염려하여 섣불리 반환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공개할 이유도 없는 것을 공개할 때는 분명 공개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꼭꼭 감춰진 것들이 저절로 세상에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포괄적청구권포기조항도 기초적 사실관계의 사정이 일반적 정의의 기준에 비해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면 그 효력 자체를 부인할 수도 있을 것이며, 피침탈자에게 약탈의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것도 정의의 기준에 반한다고 본다. 문화재에 관한 한 침탈자들이 정당한 입수경로를 증명하지 못하면 약탈로 추정하고, 당연히 반환하게 하는 방향으로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갑작스런 공개에 아무런 저의가 없다면 이제부터 숨겨진 문화재의 존재를 알게 된 새로운 반환청구권리의 출발점이기도 하므로 마냥 손놓고 있을 일도 아니다. 제국주의시대는 이미 지나갔지만 그 상처들은 비단 위안부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런 약탈된 문화재를 통해서도 그대로 남아 있으며, 침탈국들의 뻔뻔함도 여전하다. 아니 아직도 이름만 달리한 채 여전한 ‘제국주의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을 비롯해 이집트, 그리스, 페루 등과 같이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는 여러 국가들과의 국제적인 협력을 강화하여 하루빨리 돌려받아야 할 것들이며, 제국주의적 탐욕이 아닌 문화적 양심들이 남아 있다면 당연히 제자리로 갖다 놓아야 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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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3일 화요일

연습29

오바마가 정치적 명운을 걸고 추진해 온 건강보험법안 수정안을 미국 하원에서 전격적으로 통과시킴으로써 수세에 몰린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며 다시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다. 이 건강보험법안은 지난해 12월 상원이 통과시킨 법안을 받아 일부 내용을 바꾼 수정안으로서 새로이 3,200만 명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해 최종적으로 전 미국인의 95%가 수혜자가 되도록 목표를 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상원에서 통과한 원안은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법적인 효력이 발생될 예정이고, 수정안은 상원의 표결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수정안에 대한 상원의 표결은 과반수만으로 통과되는 ‘조정’방식으로 표결이 이뤄지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미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상원구도를 감안하면 통과는 거의 확정적이라고 한다. 수정안의 경우 이처럼 건강보험적용 범위를 대폭 늘림으로써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장질서의 판에 사회적 배려의 폭을 확대한 것으로서 더욱 의미가 크다. 그러나 과반수에 단 3표차로 통과가 되었고, 여전히 민주당내의 반대의견이 있으며, 공화당의원 전원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은 변함이 없어 ‘위험한 승리’로 표현하며 애써 정치적 승리라고 하기에는 유보적인 입장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1965년 메디케어 도입 이후 45년만에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혁명적 조치’라는 평가를 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가 대세인 듯 하다. 오늘이 있기까지 오바마는 그동안 사회주의자라는 비난까지 받으면서도 끝까지 반대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자신의 조국 미국의 장래를 염려하는 진심으로 자신의 민주적 상식에 기초하여 전력을 다한 끝에 진정어린 감동으로 반대의견을 돌려 놓으면서 담대한 희망의 서곡을 울린 것이다. 같은 민주당내의 반대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그의 지난 1년간의 노력을 살펴보면 진정으로 소통하는 정치의 실천과 철학이 어떤 것이라는 분명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수천 번의 국민참여토론회와 수백 번의 방송토론회 등을 통한 설득작업, 특히 지난 일주일 간은 전용기 에어포스원까지 동원하여 직접 백악관으로 초대하여 면담하거나 전화 통화로 끈질기게 찬성을 독려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는 틈만 나면 우리의 교육제도를 치켜세우며 본받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아마도 단시간승부에 강한 한 측면만을 강조하여 평가한 것으로서, 미국사회의 위기를 단번에 극복하기 위한 조급증을 표현한 것 이상의 의미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절차를 존중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소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느리지만 상식에 기초한 그의 일관된 실천과 철학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여기나 거기나 정치의 본질적 속성이야 큰 차이가 있으랴마는, 그의 말대로 위대한 ‘상식의 승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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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2일 월요일

연습28

봉은사 경내 다래헌에 머무르기도 한 법정스님이 무소유의 삶과 정신을 오롯이 남기고 열반에 드신 지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바로 그날 조계종단의 전격적인 직영사찰결정으로 불교계가 어수선하다. 근현대사에서 한국불교의 역사는 정통성을 말살하고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악용하기 위한 일제의 왜색화와 총독부로의 종권귀속으로 주지임명권을 통한 불교재산과 종권을 장악하기 위한 제도의 답습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계종과 태고종간의 비구・대처의 분규를 거쳐, 통합 조계종단내에서도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 걸친 청담스님계와 경산스님계의 대립,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계속된 조계사측과 개운사측의 대립, 10・27법난과 신흥사사건 등과 같은 부끄러운 사건들이 본래의 불법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불투명한 재정운영으로 인한 동국대 스님들 간의 다툼이나 마곡사와 관음사의 주지 다툼 등과 같은 크고 작은 분규가 끊이질 않았으며, 본래의 불법으로 돌아가기 위한 무수한 개혁작업들도 함께 이루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현재 조계종단 소속 2천500여 사찰 중 조계사, 선본사, 보문사 등 3개의 직영사찰과 도선사, 봉은사, 연주암, 석굴암, 낙산사, 봉정암, 내장사, 보리암 등 8개의 특별분담금사찰이 있고, 그 중 봉은사는 연간 재정규모가 국내 단일사찰 중 최대규모이어서 늘 이권다툼의 온상이 되어 왔다. 총무원장을 역임한 탄성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은 일찌감치 불교개혁과 사회민주화, 통일운동을 위해 앞장 서 왔다. 2006년 말 전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제의로 서울 봉은사 주지로 취임해 천일기도에 들어가는 한편, 그동안의 분란을 잠재우고 투명한 재정공개와 신도들의 사찰운영 참여확대 등으로 불교계 내외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명진스님은 천일기도 중 유일하게 노무현 대통령 장례일인 지난해 5월29일 산문 밖을 나와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천일기도가 끝난 8월30일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봉은사직영사찰결정에 대한 반발은 사전에 실질적 주인인 신도들이나 명진스님측과의 충분한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행태때문으로 보인다. 국가든 종교단체든 간에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소통으로 그 뜻을 모아 조직하고 운영되는 것이 민주적인 정당성을 갖는 일이다. 그런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면 공동체는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이든 기만과 허구에 불과할 것이며, 결국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껍질뿐인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참여와 소통을 통한 정당성만이 그 존재를 존재답게 하는 본질이며, 남의 것을 탐하지 말고, 부끄러워할 줄 알며 합리적으로 그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열린 지혜들이 아쉽다. 이판사판(理判事判) 끝장으로 내달릴 일은 아니며, 종교와 무관한 세력들이 개입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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