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9일 일요일

본색156


사람이 사상보다 앞선다. 사상이란 사람을 이해하거나 사람의 행동양식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표로서의 성격을 갖는 관문에 불과하다. "부자가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것이 바로 사상보다 앞서는 '사람의 증명'이 아니겠는가 싶다. 특히나 보수적인 사상적 성향의 사람들로부터의 이와 같은 선언은 사유재산제도의 중요한 한 부분인 '상속의 포기'로서 신선한 혁명에 다름 아니다. 이런 바람(風)들이 사상의 본색을 넘어서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불어올수록 '사람사는 세상'에서의 골은 더욱 얕게 될 것이다. 망망대해의 어둠에서 뭍으로 이끄는 한줄기 빛이 있다면 모두가 그 곳으로 향하듯이 요즘 보기 드문 '빛과 소금'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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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색155


기술과 제도는 대개 순기능과 역기능을 함께 갖는다. 요즘의 대세인 소셜네트워크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소외를 극복하는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새로운 소외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리라. 망의 중립성과 보편적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고통의 씨앗에 불과할 것이다. 일상 생할에 필수적인 요소로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이미 그것은 공공재다. 권력과 자본의 밑밥을 통제할 수 있고, 많은 대중들이 자유로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그물을 짜는 일은  과연 누구의 몫일까? 누군가에게 그 일을 맡긴다면 어떤 그물을 짤 사람들에게 위임을 해야할까? 모든 선거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행사하여야 하는 한표의 또 다른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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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색154


육신의 몸이 살아서 깨달음을 말하는 것은 대부분 거짓이다. 육신의 몸이 죽어야만이 아마 절반의 진실일 것이다. 육신의 몸이 살아서 돌아보는 이유는 사후 영혼들의 안식을 위한 준비이며, 그러한 인과의 연을 끊어내어 오래도록 평화롭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미리 알아차리지 않으면 영혼도 습관이 있어 그에 따라 움직이려 하므로 내내 조용하질 못할 것이다. 참회와 기도는 그러한 잘못된 습관들을 미리 알아차려 준비하게 하는 기술을 순화하고 체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죽어서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자들에게는 죽음조차 가소로운 일이므로 그들에게 두려운 것은 없으리라. 다만, 의지와 상관없이 좌우되는 일들에 대한 다소간의 염려가 있을 뿐,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니 원망의 대상을 파괴하지 않고 스스로를 정리하는 일을 어찌 가장 위대한 혁명의 하나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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