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몸이 살아서 깨달음을 말하는 것은 대부분 거짓이다. 육신의 몸이 죽어야만이 아마 절반의 진실일 것이다. 육신의 몸이 살아서 돌아보는 이유는 사후 영혼들의 안식을 위한 준비이며, 그러한 인과의 연을 끊어내어 오래도록 평화롭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미리 알아차리지 않으면 영혼도 습관이 있어 그에 따라 움직이려 하므로 내내 조용하질 못할 것이다. 참회와 기도는 그러한 잘못된 습관들을 미리 알아차려 준비하게 하는 기술을 순화하고 체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죽어서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자들에게는 죽음조차 가소로운 일이므로 그들에게 두려운 것은 없으리라. 다만, 의지와 상관없이 좌우되는 일들에 대한 다소간의 염려가 있을 뿐,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니 원망의 대상을 파괴하지 않고 스스로를 정리하는 일을 어찌 가장 위대한 혁명의 하나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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