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30일 일요일

본색96


변화를 본질로 하는 진보의 사명은 현재의 부당한 공포와 강제적 현실로부터 보다 많은 사람들의 피폐해진 자유와 평화로운 본성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다운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일일 것이다. 무지와 혼돈으로부터 깨어나게 하여 부패와 나태를 막고, 자신부터 앞장 서서 깨우치는 일은 언제나 존경스러운 소수의 선각자의 몫이기도 하였고, 앞으로도 외로운 선봉은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들처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그들만의 자리이기도 할 것이다.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원칙적인 신념을 살려내었던 위대한 사람들을 기억함으로써 그 많은 실패들이 결코 좌절은 아니었다는 것을 역사로 기록하게 하는 것은 그들로 인하여 살아남은 자들의 남아있는 빚이 될 것이다. 서둘러 실패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좌절은 더더욱 결코 아니다. 성급한 결론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것은 변화를 바라지 않는 세력들이 가장 원하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되 좌절하지 않고, 그 시점으로부터 다시 우뚝 연대를 위한 행진을 계속 하는 것, 그 길이 아니면 다시 길을 찾아 또 분열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진보의 선구(先求)적 가치가 아닐까 싶다. 따라서 분열도, 연대도 진보의 본질과 연결되는 것이므로 축의 이동이 아닌한 비난만할 일들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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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색95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들은 그래도 어떤 여지들은 남아 있다. 그것이 절망이 아닌 희망이었으면 하는 바램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의 그릇에 담기는 구체적인 내용은 서로 다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는 것이리라. 변화를 추구하되 늘 새롭게 다시 역량을 결집할 줄 아는 순발력과 포용력, 그리고 정의로움이 고임이나 머무름없이 지치지 않게 강을 바다로 흐르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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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색94


강물도 흐르고 사람도 흐른다. 흐르지 않는 것은 거의 죽어있는 것들이다. 진보는 변화다. 변화하지 않는 진보는 또한 보수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기도 하지만, 연대로 흥하기도 한다. 변화의 선두에서는 분명 분열이 생명의 길이고, 큰 물길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연대가 또한 변화를 위한 진보의 길이기도 하다. 새로운 물길을 내기 위해서 물살의 강도를 높여야 할 때 어떤 선택이 보다 상식적인지 살펴야 한다. 원칙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전술적 선택을 하라는 말이다. 적어도 제도 속에서는 그것이 정치 아니겠는가. 원칙적 신념들은 대부분 제도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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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9일 토요일

본색93


물살의 세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거꾸로 오르는 연어들은 각자의 목적이 있다. 죽어서 살리기 위함이다.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살아남기 위함이다. 원망할 겨를도 없이 운명처럼 살아가는 자, 만약 참(眞)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들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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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8일 금요일

본색92


어느 봄 날의 공원에서 녹색과 붉은 색, 그리고 희미한 노란색이 잘 어울린다. 함께 좋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각자의 뿌리를 존중하면서도 더 많은 대중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정치도 그런 연대의 기쁨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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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7일 목요일

본색91


원하지 않는 곳에서 와서 예정할 수 없는 곳으로 가는 바람(風)은 비록 바람(風)이긴 하지만 나의 바람(願)은 아니다. 원하는 곳에서 예정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한 바람(願)을 위해서는 스스로 바람(風)이 되는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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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6일 수요일

본색90


바람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언제 바람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바람의 성질과 그 속을 깨닫지 못하는 눈과 마음이 더 문제다. 맞바람은 버거울지라도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은 가야할 길을 훨씬 수월하게 한다. 다시 바람의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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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4일 월요일

본색89


존재에 대한 투명한 관찰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정확한 인식이란 어려운 일이다. 해석이란 존재에 대한 인식의 관점이라 할 것인데, 존재로서의 사실 자체가 확정되지 않거나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여지가 있음에도 해석을 운운하는 것은 일의 순서가 바르지 않은 것이며,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한다. 존재로서의 투명한 사실확정  자체가 해석의 절반 이상을 불필요하게 한다. 우리가 과학에 의지하는 이유는 본질에 가장 근접한 차선의 객관적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선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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