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느낌] 겨울본색


가릴 것도, 가려진 것도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진실 뿐이다.

Posted via email from 길 위의 바람

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느낌] 시절인연


몇 겁을 지나야 너에게 닿는 것인가.

Posted via email from 길 위의 바람

2009년 11월 22일 일요일

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느낌] 가을본색


잎으로 하늘 가리기, 시간이 지나면서 가을은 모든 것을 드러내고야 만다.

Posted via email from 길 위의 바람

2009년 11월 19일 목요일

[메모] 강물의 내면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흐르는 강물의 내면에도 양측면이 있다. 좌측으로 구르려는 모래들과 우측으로 치우친 자갈들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 바닥에서는 서로가 뒤엉켜 치열한 물길을 이루면서 시시각각의 생존을 일구어 낸다. 바다에 도달하는 순탄한 인생과 중도에 멈춰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삶들도 똑같은 하나의 물길이다. 바다에 도달한다고 한들 궁극의 행복과는 별개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갈구하는 보편적인 희망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바다의 물길도 다시 하늘로 올라 비가 되어 새로운 계곡을 이루면서 다시 강으로 흐르듯이 흐름은 중단될 수 없는 피의 순환과도 같다. 막혀 멈추지 않고, 넘쳐 터지지 않고, 고갈로 마르지 않도록 적절한 소통의 유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도 이와 다를 것이 없을 듯 하다.

Posted via email from 길 위의 바람

2009년 11월 18일 수요일

[메모] 가다 보면

멀리서 볼 때는 길은 하나로 올 곧다. 그러나 가다 보면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부지불식중에 스스로가 길을 벗어난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제 자리에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끔은 제 모습을 찾기가 몹시도 힘들 수도 있다. 그 때는 이미 길을 벗어난 모습대로 자신이 세상에 정의되어 있음을 본다. 원하지 않았던 자리라면 그 고통의 무게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가능한한 정도로 올라 서는 일, 그것이 남아있는 시간 속에서의 과제일 것이다. 길의 방향은 모두 다르더라도 각자의 길은 각각의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Posted via web from 길 위의 바람

2009년 11월 7일 토요일

[메모] 상식과 법

상식만큼 정의로운 기준은 없다.
법이 상식에 어긋난다면 상식에 맞도록 고치도록 노력하는 것이 입법기관의 의무이고,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의 자격은 없는 것이다.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메모] 자유의 척도


자유의 척도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2009년 10월 4일 일요일

[메모] 길 위의 말(言)

  • RT @in_seung: 따라서 진화론이라는 것도 미생물 따위의 의지와 관계없이 인간이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라능... RT @sookmook: 네, 식이란 건 같겠지요. RT @in_seung: 미생물의 식과 인간의 식이 다르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Sat Oct 03 00:24:14 +0000 2009
  • RT @oisoo: 담 너머로 지나가는 뿔만 보아도 사슴인지 염소인지 알 수 있다는 법문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도사들도 뿔만 보고는 모른다. 짝퉁을 만드는 기술이 도의 경지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Sat Oct 03 00:05:23 +0000 2009
  • RT @ByEobs: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기거동작이 밝고 활달하고 분명해야 한다. 어둡고 음울하고 불분명함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라 만나는 이웃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2008, 법정] 아름다운 마무리
    Fri Oct 02 06:47:52 +0000 2009
  • RT @AnarKor: 기록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 가르침과 배움이 그것들인데 이 이야기는 트위터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어떤 식의 대화라도 결국 정보를 주고받는 상호 가르침과 배움이기 때문. 트위터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리라.
    Tue Sep 29 03:33:30 +0000 2009
  • RT @tjryu: 실제로 노 대통령은 '바보'라는 호칭을 즐겨 했다. 사람들은 겉만 보거나 단순한 표현을 보고 '맞아, 그 사람 바보야' 하고 만다. 하지만 上德若谷, 大白若辱 -이런 말로 가득한 도덕경 41장을 보면 그분이 성인이었다 해도 과언이
    Mon Sep 28 23:12:15 +0000 2009
  • RT @s0ulhacker: 할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행복하다. - 임마누엘 칸트의 행복의 조건
    Mon Sep 28 07:29:33 +0000 2009
  • RT @ReadLead: 혁신은 세계관/인간관/비즈니스관을 지속적으로 혁파하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모순을 창의적으로 극복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http://read-lead.com/blog/914
    Fri Sep 25 03:48:49 +0000 2009
  • RT @ByEobs 정치는 본질적으로 더욱 뜻 깊고 위대한 일이에요.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절대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090615, Cine21] [김혜리가 만난 사람] 지식소매상 유시민
    Tue Sep 22 06:41:43 +0000 2009
  • RT @rosedy800 꿈과 날개가 없는..RT@oisoo매미가 날개를 가지기 위해 칠년 동안을 땅 속에서 굼벵이로 살았다는 사실에는 경탄하면서 대부분 자신이 칠년을 바쳐 날개를 가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생토록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형국
    Tue Sep 22 06:36:13 +0000 2009
  • RT @kleinsusun: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Mon Sep 21 07:56:53 +0000 2009
  • RT @murianwind: RT @marishin: “나는 죽어도 좋아요”라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아이는 대답했다. “학원을 안 가도 되잖아요.”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아이는 8살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http://bit.ly/c92fB
    Mon Sep 21 07:52:48 +0000 2009
  • RT @gatorlog 폴 크루그먼이 드디어 미국을 휩쓸고 있는 광기를 언급하고 나섰다. 오바마가 뭘 하든지 빨갱이짓이니 나찌같다니 하고 몰아부치는 미친 전염병. 우리안의 나찌를 보지 못한다고 개탄. 노무현을 물어뜯던 하이에나들이 떠올라 더 안타깝다.
    Sat Sep 05 06:31:10 +0000 2009
  • RT @fromhyun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까지의 3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입니다. -류시화
    Thu Sep 03 13:38:20 +0000 2009
  • RT @uering: 죽는날까지사랑이라는것을 배워야하듯,희망과절망과 낙관과비관을 배운다.찰나,순간,시시각각,걷잡을수없이 솟구치는 증오와 분노를 벼리는 이성은 발효인가 부패인가.매번 눈물을흘리니 다음에흘릴 눈물이 말라간다.아무래도 부패에 접어들었나보다.
    Thu Sep 03 01:02:54 +0000 2009
  • RT @uering: 오늘은 행성 지구 밖에서 어떤 입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안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어떤 입자들을 만들어 낼까.삶과 죽음이 만나 시공간이라는 나날..여행의 나날..표현의 나날..두근 두근 호기심의 나날.. 벌어 묵어야 하는 나날...
    Thu Sep 03 00:57:07 +0000 2009
  • RT @uering: `입자``물리학`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면 `입자``심리학`이라는 말도 가능하겠다 싶다..이래저래 지적생명체가 구사하는 말은 결코 세계를 다 담을 수 없으니...끊임없이 꾸준하게 다가가는 것만 해도 `그` `어디`인가..
    Thu Sep 03 00:55:56 +0000 2009
  • RT @uering: 세상살이... 이런저런 쓴맛을 겪으면서 이런저런 단맛에 취하지 않기란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hardship #flavor #decay
    Thu Sep 03 00:54:57 +0000 2009
  • RT @uering 거품안에서의 발버둥.허공에 가치를 일단 띄워놓고..죽음과 피눈물로 꾸역꾸역 가치를 채워 메꾸어야 하는`평범한`광기..적은 내안에 있다.적은 저마다의 영혼 은밀한 곳에 호시탐탐 있다.
    Thu Sep 03 00:51:37 +0000 2009
  • @heterosis 제도로부터의 소외, 힘으로부터의 소외, 그 제도와 힘 속에는 이른바 주류와 비주류라는 경계의 강이 흐르고 과학뿐만 아니라, 자본 등등 한 개인의 악의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
    Fri Aug 28 01:38:29 +0000 2009
  • RT @twoarchi 광장은 원래 잔디를 깔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여러 이벤트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잔디는 공원에 깐다고 합니다. 가족단위로 옹기종기 휴식을 취하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광장인지 공원인지 구분을 못합니다.
    Wed Aug 26 14:53:59 +0000 2009
  • RT @xguru :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그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상에게 화를 내는 것 적당하게 화를 내는 것 적절한 시기에 화를 내는 것 올바른 목적을 위해 화를 내는 것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Wed Aug 26 02:06:09 +0000 2009

2009년 9월 8일 화요일

[생각]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의 위헌성


수차례에 걸친 형법상 간통죄(형법 제241조)의 위헌논란에 이어 혼인빙자간음죄(형법 제304조)도 다시금 합헌성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간통죄의 위헌논란과 관련하여서는 1990년, 1993년, 2001년, 2008년에 이미 4번의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있었고,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2002년의 결정이 있었다.


최근의 2008년 결정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간통죄에 대해서는 이전과는 많은 시각의 변화를 보이고는 있으나(위헌의견이 많았지만, 위헌정족수미달로 합헌판단), 여전히 합헌인 상태로 유지되고 있으며,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재판관 7 : 2의 합헌결정으로 남아있는 것이 지금의 현주소다.

간통죄에 관한 최근의 기사에 의하면 실무에서도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실형선고의 비율이 두드러지게 낮아지고 있어, 이미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는 법률이 아닌가의 문제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며, ‘식물형법’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혼인빙자간음죄의 경우는 현행 법규정이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어 직접정범으로서 범죄의 주체가 남자에 한정되어 여자의 경우는 공동정범이나 간접정범외의 범죄의 주체로 되지는 않으므로 남녀차별이라는 평등권의 침해여부가 가장 쟁점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간통죄와 혼인빙자간음죄의 위헌성판단에 있어서는 우선적으로 양자의 법적 성격을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간통죄의 경우는 이른바 ‘사회적 법익에 관한 죄’이고, 혼인빙자간음죄는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이므로 우선은 그 입법의 취지부터 다르다.

즉 형벌로써 간통을 다스리는 목적은 개인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데 국가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간통을 처벌함으로써 건전한 성풍속을 유지하려는데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다수의 학자의 견해들이다.

그러나 일차적인 목적이 사회의 건전한 성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라 하더라도, 오늘의 사회는 이미 성적 개방화의 속도가 급격히 진전되어 간통을 처벌함으로써 사회의 질서를 보호하려는 당초의 입법목적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그동안 부수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제도적 수단으로서 나름대로 기능을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간통으로 여자가 남자를 고소하는 비율과 남자가 여자를 고소하는 비율이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상대적 약자인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퇴색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개인의 사적 생활영역에 국가가 개입함으로써 오히려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와 범죄자의 낙인, 그리고 그로 인한 재산적 손해 등 개인의 자유침해에 대한 우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부부간의 정조의무위반으로 가정이 파탄의 지경에 이른 경우라면 국가의 형벌권으로 다스리기보다는 당사자간 이혼의 문제로 접근하여 민사상 손해배상 등의 문제로 해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형사상 처벌로 다루는 것은 지나친 ‘범죄화의 확대’와 ‘개인의 법적수단남용’문제를 아울러 제기한다.

비록 위법수집증거능력의 증거능력이 배제되고는 있으나, 법적 분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기 위하여 무리한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오히려 개인의 ‘감정정리’로 끝날 수 있는 문제를 끝없는 ‘증오와 보복’의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또 다른 범죄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혼인빙자간음죄의 경우는 넓은 의미에서 강간죄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일차적인 보호법익으로 한다. 강간과의 차이점은 혼인의 의사가 없음에도 혼일할 것을 핑계삼아 상대방을 속여서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성행위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일반적 행동자유’로부터 유래하는 ‘의사결정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보호되어야 할 개인의 본질적 자유영역일 것이므로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로 범죄의 객체를 한정하고 있는 현행법은 남자를 그 보호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차별의 합리성에 있어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간통죄의 경우는 개인의 사생활영역에 국가가 간섭하여 사회의 성풍속이라는 질서유지의 필요성이 지속되느냐의 문제가, 혼인빙자간음죄의 경우는 남녀를 불문하고 동등하게 처벌함으로써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존중이라는 평등의 실현이 과연 합리적 일 것인가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완벽한 자유의사를 전제로 한 간통죄의 경우는 폐지되어야 할 것이고, 위장된 자유의사를 빙자한 혼인빙자간음죄의 경우는 ‘음행의 상습없는 사람’으로 그 대상에 있어 차별성을 두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행의 법률은 양자 모두 위헌이라고 본다.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독백] 필요한 이유들


모든 일이 마음같이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누굴 탓할 일은 아니다.

모든 일이 내 마음처럼 움직인다면
세상을 향하여 할 말도 없을 것이다.

더불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이유들도 없을 것이다.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메모] 길 위의 말(言)

  • RT @binnamoo: 허경영이 뜨는 이유... 그의 발언에는 증오와 저주가 없다. 황당하고 웃기지만 치유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부담없는 한편의 동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
    Sat Aug 22 05:24:04 +0000 2009
  • RT @falnlov RT @egoingRT @ANARCHI_4_KOREA옆 건물 담장 위로 고양이가 걸어간다. 우리에게 단절의 벽인 그것이 그에게는 소통의 길인 것이다
    Fri Aug 21 14:56:16 +0000 2009
  • RT @sookmook 진정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과 지성 뿐만이 아니라, 감성과 인성, 그리고 나아가 전우주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줄 아는신성까지 두루 겸비하는 것이다.
    Fri Aug 21 14:32:39 +0000 2009
  • RT @iFoog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에게 퍼주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주류라면 왜 그 주류들은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컨츄리리스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일까? 결국은 그냥 싫은 것이다.
    Fri Aug 21 14:19:54 +0000 2009
  • RT @Bartenroy: 테레사 수녀님이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고 느낄 때 오는 고독감은 가난 중의 가난이다'라고 하셨단다. 요 몇일 깜박잊고 메신저를 안 켰는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갑자기 슬퍼졌다...
    Fri Aug 21 04:06:40 +0000 2009
  • RT @royalwine: 내용은 형식을 만들고 형식은 내용을 지배 RT @ReadLead: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도구는 인간을 도구에 예속시킨다. 도구의 탄생과 발전은 인간 확장의 역사인 동시에 인간 축소의 역사 http://bit.ly/2TJ0qt
    Thu Aug 20 02:19:48 +0000 2009
  • RT @minoci: RT @heterosis: 의롭게 살려는 사람은 보상에서 만족을 얻으려 하지 말고 자기 삶의 존재양식 그 자체에서 만족을 구해야 한다. -김대중
    Wed Aug 19 02:23:36 +0000 2009
  • RT @oisoo: 마음을 주고 받아야 소통이지 말을 주고 받아야 소통인가요. 자기 마음의 담벼락은 보지 못하고 남의 글 짧다 길다 탓하지 마세요. 그대 마음만 열려 있으면 한 음절만으로도 소통은 가능합니다.
    Wed Aug 19 02:19:46 +0000 2009
  • RT @moonumok 조개껍질 묶어 목에 걸어줬더니 무겁다고 지랄, 달빛 창가에서 세레나데를 불러줬더니 시끄럽다고 지랄, 목숨 걸고 하늘에서 별을 따다 줬더니 눈부시다고 지랄. 사랑아, 나더러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Mon Aug 17 04:40:48 +0000 2009
  • RT @biguse RT @HanBaDa_ 정치를 혐오하고 관심갖지 않는 국민들은 혐오스러운 정치인만 갖게 된다. 영국 정치학자 존 슈트어트 밀(J.S Mill)
    Sun Aug 16 14:38:04 +0000 2009
  • RT @oisoo: 왜 그대는 충분한 여건과 능력을 갖추었는데도 재기하지 못하는가. 마음은 성공을 향해 열려 있는데 행동은 한사코 실패를 향해 곤두박질 친다. 원인은 오직 한 가지, 아직도 지나간 날들의 자기미련을 깨끗이 목졸라 죽이지 못했기 ...
    Sun Aug 16 05:15:34 +0000 2009
  • RT @royalwine RT @hongss :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들은 스스로 창의성을 가지기보다 다른 사람의 창의성을 인정해 주고 그것을 실현시키도록 지원하는 능력이 있던 사람이다. - 칙센미하이교수
    Sun Aug 16 03:11:47 +0000 2009
  • RT @heterosis: RT @royalwine: 경영을 하려면 돈, 시스템, 리더의 위상수립도 좋지만, 역시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보는 눈" - 사람이 일의 시작이자, 끝이다.
    Sat Aug 15 06:12:15 +0000 2009
  • RT @ranghes: 勤政(경복궁 정전의 이름, 정도전 지음)은 '정치에 부지런하라'이다. 하지만 정도전은 결코 무조건 부지런하라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함에 부지런 하라고 이런 이름을 지은 것!
    Sat Aug 15 06:10:08 +0000 2009
  • RT @fromhyun: 그래도 사람은 사람을 찾고 사람은 사람의 사랑에 목숨걸고 사람은 사람의 마음에 스스로 갇히고 사람은 사람의 가슴에다 꽃씨를 심고 사람은 사람에 기대 살 수밖에 없어 더욱 가엾고 쓸쓸한 일이지...
    Fri Aug 14 14:07:03 +0000 2009
  • RT @oisoo: 배고프던 시절, 저렴한 가격에 맛까지도 기막한 라면을 발명한 사람에게 경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적어도 내가 쓰는 글들이 허기진 영혼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라면 한 그릇 정도의 감동이라도 줄 수 있다면 나는 만 ...
    Fri Aug 14 13:33:48 +0000 2009
  • RT @asincho: 오스트리아 건축가 훈더트바서가 그랬다네요. "직선은 죄악이며 죽음의 선이다. 곡선은 신이 만든 선이고 직선은 악마가 만든 선이다." 만화 <식객>에 나온 말입니다. 대운하와 관련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Fri Aug 14 13:29:30 +0000 2009
  • RT @jamiepark: 마음을 울리는 공감 RT @egoing 트위터에서 나의 생각은 타임라인을 타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우리의 대화는 리플을 타고 좌우로 흘러간다. 트위터의 매력은 이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역동성이 만들어내는 공간감
    Fri Aug 14 07:06:45 +0000 2009
  • RT @royalwine 단순히 기술만 전달해 주는 스승은 그 목적을 도달하면 떠나게 되지만, 마음까지 전달해 주는 스승은 평생 가슴에 남는다. 트위터 스승도 마찬가지.
    Wed Aug 12 04:25:38 +0000 2009
  • RT @xguru 곰세마리 가사는 너무 편파적이다. 아빠곰은 뚱뚱하다는 그릇된인식을 아이에게 인지시킨다. 아빠곰은 멋있어로 바꿔불러서 녹음한후 애기에게 들려줘야겠다
    Tue Aug 11 03:03:24 +0000 2009
  • RT @jjoony1: 이런 멋진 속담이.. ^^ RT @cityhntr: 속담의 또발견-부전자전. 부자의 돈은 알아서 구른다. RT @oisoo: 속담의 재발견-부전자전. 아버지의 쩐이 곧 아들의 쩐이다.
    Mon Aug 10 00:48:58 +0000 2009
  • RT @hcroh: 아침부터 작열하는 태양 건너편에 아직 지지 못한 하현달이 하얀 구름처럼 떠 있는 아침입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지만 아직 살아있는 모든 것에 축복이 있길 빕니다.
    Mon Aug 10 00:44:42 +0000 2009

[메모] 소통2


소통이란
나로부터 남을 향해 가는 것으로 알았다.

소통이란
남으로부터 나를 향해 오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정작 소통은
나로부터 나에게로 오는 나를 향한 갈증이었다.

스스로 보고, 듣고, 읽고, 말하고, 쓰는 것 조차 제대로 된 소통이 없다.
보고, 듣고, 읽은 대로 혼자 말하고 쓰는 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겠다.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메모] 매듭


모든 것은 길 위에 있다.

어떤 일의 시작과 끝도 없고,
모든 일은 언제나 진행 중이다.

늘 매듭짓기에 연연해 하는 사람은
결국은 아무 것도 마무리하지 못한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실체다.

오직 나아갈 뿐이다.



2009년 8월 17일 월요일

[메모] 꿈과 법

좋은 해몽이 좋은 꿈을 만들고,
좋은 해석이 좋은 법을 만든다.

[메모] 정의할 수 있는 것들

세상에서 개념적으로 적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과학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여
많은 것들을 검증할 수 있게 되었다하더라도
과연 우리 삶의 얼마만큼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어찌보면 아직 증명할 것들이 남아있다는 사실들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민해야하는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메모] 강은 경계를 흐른다.

강은 경계를 흐른다.

내 땅을 관통하는 것도,
강 건너 너의 땅을 관통하는 것도 진리는 아니다.

진리의 강은 내 땅과 네 땅의 경계를 녹여
모두를 끌어 안고 바다로 가는 것이어야 한다.

내 땅 만을 적시는 것도
네 땅 만을 적시는 것도

타는 목마름으로 갈망하던
그 진리는 아니다.

[잠깐] 독서의 이유

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
책을 읽어서 무엇이 되려는 것일까?

이 세상의 책의 종류가 수만가지 이듯이
이 세상의 진실의 가짓 수도 셀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더라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아니 읽느니만 못하지 않겠는가?

소통이란 본질적으로 쌍방향성을 띄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전제로 한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일방통행뿐이다.

그리고 다른 방향의 통행을 있는 그대로 보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해하는 역주행이다.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 중에서 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날고 들지는 못해도 다양한 차이를 존중할 줄 아는 배려심일 것이다.

책 한두권 읽지 않았다해도 생존의 현장을 통해 이미 사람의 마음과
세상을 읽고 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 것인가?

수만권의 책을 읽었다 한들 한 사람의 진심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또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일주일에 사회과학서적 2~3권을 읽어야 사회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다는 것은
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인가?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메모] 지적 수준


지적(知的) 수준이란
세상을 아는 정도를 말한다.

감히 '세상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나의 마음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더 잘 꿰 뚫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변화무쌍한 불가사의한 일들을 그 일부분일지라도
부족한 말이나 글로라도 균형있게 표현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자신의 약점은 되돌아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약점을 비난하거나 오히려 상대방의 장점까지도 폄하한다면

그런 사람들의 지적(知的) 수준은
지적(指摘) 수준이다.




[메모] 소통



소통이란

막힘없이 흐르는 것,

서로의 배관이 그 굵기를 달리하여도
한쪽은 넓히고, 다른 일방은 좁혀서
입을 맞추는 것

서로의 마음까지도 굴절없이
전하고 받는 것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메모] 견제와 균형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을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보면 권력도 본질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늘 남용의 우려가 있는 것이다.

정치가 종교가 아니고, 정치인이 성직자가 아닌 것은 분명할 것이므로 정치로부터 궁극적인 가치의 실현을 기대하는 것은 한바탕 부질없는 꿈일런지도 모르겠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누가 집권을 하든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듯이 상대적 권력은 상대적으로 부패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헌법도 그와 같은 불신에 기초하여 국가의 권력을 한 곳으로 집중하지 않고,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로 분산시켜 상호 감시와 견제를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리라.

최근의 정치권 일각에서의 개헌 논의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실질적인 권력분립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비판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제도에 있다기보다는 제도의 중심에 있는 인간의 철학에 있다.

아무리 제도를 바꾼다고 한들,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서는 형식적인 틀만 바꾼다고 해서 큰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인간의 중심에 자리한 가슴에 어떤 가치관으로 채울 것인가가 바로 핵심이다.

바다로 흐르는 강물이 곧은 길로 바로 직행하지 않고, 굽이 굽이 굽이쳐 흐르는 것도 때로는 좌로, 또 때로는 우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충격을 줄여가며 속도를 조절하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서로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속 편하고 한가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느림의 철학까지는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결코 빠른 길 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바다로 흐르는 강물이 바다로 가야하는 소명을 잊고 흐름을 멈추어 버린다면 그 강은 그 자리에서 바로 썩어 들어가 생명력을 잃고 만다. 때로는 넘치지 않도록, 또 때로는 말라버리지 않도록 계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둑을 쌓고, 댐을 건설할 것인가. 자연적인 생태계의 힘을 거스르지 않도록 최소한의 넛지에 만족할 것인가. 어느 정도의 개입이 본질의 균형을 흐리지 않는 방법일 것인가.

바다로 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이어야 한다. 그 다양한 길들이 자연스럽게 만나서 바다를 이루는 것이지, 어느날 아침에 큰 호수를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바다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바다일 수는 없다.

이미 바다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늘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것이 균형으로 가는 견제인 동시에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개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메모] 기질과 선택

우주의 질서가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면,
우주의 하나인 개인의 기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생활의 영역에서 가장 넓은 의미의 보수와 진보일 것이며
가장 좁은 의미로는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우와 좌가 될 것이리라.

그러므로 보수와 진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이 모두 가지고 있는 기질적, 환경적 특성을 말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생존과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
어떻게 일의 선후를 정할 것이며, 어떤 수단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10만양병을 먼저 할 것인가, 빈민구휼을 먼저 할 것인가.
국토개발을 먼저 할 것인가, 환경보전을 먼저 할 것인가.

기업의 생존을 우선 할 것인가, 노동자 개인의 생존을 우선 할 것인가.
남보다 돈을 무조건 많이 가질 것인가, 남과 더불어 나누어 가질 것인가.

그 외에도 존엄사, 낙태, 간통 등의 개별문제들마다 대립과 갈등은 늘 존재한다.
그러므로 강제적인 통합보다는 분열이 오히려 자연적인 생명현상에 가깝다.

그러나 어느 하나의 선택이 결코 전부일 수는 없다.
서로가 적당한 선에서의 조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 사회가 민주적이라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대적인 가치가
하나의 질서를 이루어 대화와 타협으로 방향을 설정해 나갈 것이고,

그 사회가 권위적이라면 공감대적인 가치보다는 지도자의 기질이나 집권세력의 의지가
곧바로 하나의 질서가 되어 사회의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 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활영역에서의 선택에서도
보수적 기질과 진보적 기질의 갈등은 일상처럼 존재한다.

그러므로 각자는 어떤 사안에서는 진보적이면서, 또 어떤 사안에서는 보수적일 것이므로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보수와 진보는 개인의 기질과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과 사회의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기질적, 환경적 특성들을 균형있게 조절하여
공정한 권위로서 한 그릇으로 담아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제도화된 권력으로서의 국가의 존재이유이기도 할 것이리라.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메모] 생존과 기억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이지 않고서야 어찌 생존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생존하는 모든 것들이 끝까지 다 이기적인 것은 아니다.

비록 대개의 본질은 이기적일지라도, 그 중에서도 인간만은
자기성찰과 교육을 통해서 이성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이성마저도 객관적으로 도덕적이지 못하다면
세상은 악의들이 지배하고, 종교는 더욱 창궐할 것이다.

가끔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들이 늘그막에 생명을 이야기하며
슬그머니 세상과 타협할 때는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다.

생존하지 못해 죽어간 사람들이
결코 비도덕적인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해서
반드시 도덕적인 것도 아니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신의 뜻을 굽힘이 없이 일관된 사상과 활동으로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의 생존을 위해 희생한 선의의 사람들을

기록된 역사가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이리라.

2009년 8월 9일 일요일

[사진] 존재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뿌리뽑힐 때까지 기억되길 갈망하는 존재에의 희구때문은 아닐까..
스스로를 지워버릴 때까지는 스스로가 남아 있음에 대한
일종의 자기 위안같은 것..




2009년 8월 8일 토요일

[사진] 이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



[메모] 몸부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부림으로, 몸통으로 날아 가듯이

매일의 우리의 삶도 몸부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