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6일 금요일

본색127


한여름밤의 소낙비가 바람을 몰고 간 어느 새벽, 늘 오르던 등산로를 가로질러 큰 거목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혼자 치우기는 버거워 위로 뛰어 넘을까, 밑으로 기어 갈까를 망설이다 옆으로 샐 수 있는 틈을 발견하고서는 교묘하게 돌아서 갔다. 그런데 어느날 그 고목이 흔적도 없이 치워져 있다. 누군가가 뛰어 넘지도 못하고, 기어가지도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치워준 것이리라.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한 나는 악(惡)에 불과한데, 다른 사람을 배려한 그 누군가는 분명 선(善)이다. 비록 자신의 한 몸 밖에 생각지 못하는 악(惡)한 나지만, 알게 모르게 선(善)한 이들의 보이지 않는 그늘 덕에 무사하다. 늘 감사할 뿐이다.

Posted via email from 길 위의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