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주고 받는 관계는 개인적으로는 혜택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결코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혜적인 조치'라는 것들은 대부분 '은혜'를 받아야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취약한 사람들을 구속하는 또 하나의 족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른바 민주적인 선진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동행'이라는 자격만으로도 '인간의 권리'로써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야 하고, 그런 것들을 폭넓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이른바 '문화국가'로서 바람직한 모습이리라. 점점 겉만 화려한 솥을 걸어놓고 온갖 잔치를 벌이는 마당에 '국물'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국'을 필요 이상으로 배터지게 먹는 사람들의 그 간격을 무시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것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 이것을 각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만으로 국가는 또한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인가? 순간의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지는 국물'조차 걷어가는 일은 차라리 '국격(國格)' 이전에 '인격(人格)'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소외된 아래의 그늘로 부터 햇살을 펌프질해 주기는 커녕, 그마저도 막아버리려는 나라의 '국격(國格)'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인격(人格)'이 없는 곳에 '국격(國格)'이란 본말이 전도된 것이며, 자연적으로 존중되지 않고 인위적으로 강요되는 '국격(國格)'이란 용어도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된다. 품격있는 공동체로서의 '문화국가'는 '국격(國格)'보다는 오히려 구성원 개개인의 '인격(人格)'을 존중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인격(人格)'이 존중되지 않는 '국격(國格)'의 지나친 강조는 독재의 또다른 이름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진정한 '국격(國格)' 이라면 차라리 '공동체 구성원들의 간섭받지 않는 소통이 자유롭게 보장되고, 그들의 강요받지 않는 민주적인 참여의 모습인 다양한 개별 인격 그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Posted via email from 길 위의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