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경내 다래헌에 머무르기도 한 법정스님이 무소유의 삶과 정신을 오롯이 남기고 열반에 드신 지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바로 그날 조계종단의 전격적인 직영사찰결정으로 불교계가 어수선하다. 근현대사에서 한국불교의 역사는 정통성을 말살하고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악용하기 위한 일제의 왜색화와 총독부로의 종권귀속으로 주지임명권을 통한 불교재산과 종권을 장악하기 위한 제도의 답습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계종과 태고종간의 비구・대처의 분규를 거쳐, 통합 조계종단내에서도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 걸친 청담스님계와 경산스님계의 대립,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계속된 조계사측과 개운사측의 대립, 10・27법난과 신흥사사건 등과 같은 부끄러운 사건들이 본래의 불법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불투명한 재정운영으로 인한 동국대 스님들 간의 다툼이나 마곡사와 관음사의 주지 다툼 등과 같은 크고 작은 분규가 끊이질 않았으며, 본래의 불법으로 돌아가기 위한 무수한 개혁작업들도 함께 이루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현재 조계종단 소속 2천500여 사찰 중 조계사, 선본사, 보문사 등 3개의 직영사찰과 도선사, 봉은사, 연주암, 석굴암, 낙산사, 봉정암, 내장사, 보리암 등 8개의 특별분담금사찰이 있고, 그 중 봉은사는 연간 재정규모가 국내 단일사찰 중 최대규모이어서 늘 이권다툼의 온상이 되어 왔다. 총무원장을 역임한 탄성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은 일찌감치 불교개혁과 사회민주화, 통일운동을 위해 앞장 서 왔다. 2006년 말 전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제의로 서울 봉은사 주지로 취임해 천일기도에 들어가는 한편, 그동안의 분란을 잠재우고 투명한 재정공개와 신도들의 사찰운영 참여확대 등으로 불교계 내외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명진스님은 천일기도 중 유일하게 노무현 대통령 장례일인 지난해 5월29일 산문 밖을 나와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천일기도가 끝난 8월30일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봉은사직영사찰결정에 대한 반발은 사전에 실질적 주인인 신도들이나 명진스님측과의 충분한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행태때문으로 보인다. 국가든 종교단체든 간에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소통으로 그 뜻을 모아 조직하고 운영되는 것이 민주적인 정당성을 갖는 일이다. 그런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면 공동체는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이든 기만과 허구에 불과할 것이며, 결국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껍질뿐인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참여와 소통을 통한 정당성만이 그 존재를 존재답게 하는 본질이며, 남의 것을 탐하지 말고, 부끄러워할 줄 알며 합리적으로 그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열린 지혜들이 아쉽다. 이판사판(理判事判) 끝장으로 내달릴 일은 아니며, 종교와 무관한 세력들이 개입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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